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베란다에서 피어난 선인장 꽃 / 사진=박현준

주말의 한가로움을 집에서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처가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해서 나가 보았더니 환하게 웃으며, 선인장에 꽃송이가, 그것도 세 봉오리나 맺혔다고 흥분했다.

아무래도 식물 재배에 대한 관심이 아내보다 적은 나는 그게 그렇게 큰일인지 물었다. 아내는 선인장은 꽃봉오리가 맺히기도 힘들고, 맺혔다고 해서 다 피는 것도 아니라면서, 보기 드문 귀한 현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집에 귀가했더니, 아내가 또 환하게 웃으며 꽃이 피었다고, 그것도 세 송이가 모두 피었다고 말한다. 부랴부랴 베란다에 나가서 살펴보니, 정말이지 예쁘고 또 예쁘다. 글자 그대로 ‘화려(華麗)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처가 왜 그리 흥분했었는지, 피어난 선인장 꽃을 보면서 충분히 공감되었다.

넋 놓고 선인장 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거두는 것이 식물재배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 재배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도 식물의 열매나 꽃에만 관심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투자를 제 3자 입장에서 목격하는 많은 이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몇 배, 몇십 배의 수익이 났다는 기사들만 쫓는 경향이 있다.

스타트 업계에 있는 분들이나, 나처럼 그에 투자하는 입장의 사람들은 스타트업이 성장해 나가고, 수익이라는 결실을 맺는 그 지난하고 처절한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이지 그것은 식물 키우기와 닮았다.

마음이 급해서 빨리빨리 자라나라고 물과 영양분을 넘치게 많이 주고, 자주 주면, 식물은 빨리 성장하기는 커녕 쉽게 죽는다. 늘 규칙적으로 정해진 물과 양분을 주고, 관찰하면서 가꿔줘야,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성장해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운다.

매번 물을 주고, 영양분을 주고, 관찰할 때면 틀림없이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데, 하나도 자라나지 않은 것 같고 열매나 꽃봉오리가 맺히는 징조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아, 조바심 나고 내가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한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 식물을 가꾸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 투자자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드물게, 투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빠르게 수익을 내주는 스타트업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가꾸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경우가 식물 가꾸기에 있는 것처럼, 나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기보다, 내 앞에 가꿔온(투자하고 관리해온) 사람들의 정성이 지금 꽃을 피우게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선인장 키우기에 들인 노력과 시간에 늘 비례해서, 모든 선인장들이 꽃을 터트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꽃을 피울 확률은 틀림없이 높아지는 것처럼, 스타트업 투자도 들인 시간과 노력이 클수록 수익이 커지는, 시간과 노력이 수익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원칙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시간과 노력 없이 요행히 수익을 크게 내는 경우는 내 경험으로는 매우 희박하고, 설령 운 좋게 그러한 경험을 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현상을 왜곡하는 잘못된 신호가 되어 실패의 원인이 된다.

진정한 스타트업 투자자라면 이러한 횡재(?)를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스타트업 투자는 정말이지 식물 기르기와 많이 닮았다.

조바심내지 말고 관찰하며 아껴주자. 그것이 선인장이든 스타트업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