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의 ‘스타트업의 세계’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말은 ‘말(言)과 행동(行)이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람으로서의 기본자세, 태도로 갖추어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오늘은 비슷하지만 다른 말인 언문일치(言文一致)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언문일치를 ‘실제로 쓰는 말과 그 말을 적은 글이 일치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00년대 초 군중이 한글을 표기기준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실제 쓰는 말에 글을 일치시키는 것에 대한 논의가 국어학자들 사이에 활발히 일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표준표기법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언문일치’는 같은 말이지만 약간은 의미가 다르다. 투자를 하면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창업자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의사소통의 방법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아무래도 직접 대면이다. 이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제스처, 자세, 시선 처리, 화제의 선택 및 전환 등 다양한 ‘간접신호’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창업가와 투자자는 대면 미팅 만을 고수해야 할까?

짧은 문자나 메신저 소통에 익숙해진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등장함에 따라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한 정의도 변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잘 정돈된 반듯한 글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력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같은 뜻이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를 갖는 미묘하게 다른 단어의 선택이나 사소한 쉼표 한 번의 사용으로, 글 쓴 이의 개성이 보이고, 호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나는 종종 했다.

그렇게 미려(美麗)한 글에 대한 예찬도 하고 싶지만, 내가 생각하는 ‘의사소통방법’으로서의 글의 강점은 구구절절한 미사여구나 변명, 포장 등을 걷어내고 진실한 내용만을 보이게 한다는 점에 있다.

창업가가 투자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정보가 늘 좋은 내용일 수는 없다. 냉정하게 보면 스타트업의 특성상 오히려 부정적인 내용인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화나 대면 미팅을 통해서 긴 내용을 들은 것에 대해, 보고서 작성 등의 목적으로 정리한 글을 받아보게 되는데, 이때 종종 화장을 지운 맨얼굴의 사람을 대면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소위 단잠에서 비몽사몽하다가 찬물로 세수하면서 ‘확 깨는’ 그러한 경험이다. 현재 기업의 냉혹한 현실을 글을 통해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사소통을 대면 미팅과 전화로 하더라도, 정기적으로는 꼭 글로 정리된 소통을 한다. 정기적인 보고서 작성은 당연한 것이고, 그 외에 회사와 관련해서, 특히 부정적인 일에 관련해서는, 말로서 충분히 전달을 받은 후 꼭 글로 다시 확인을 받는다.

이때 ‘언문일치(言文一致)’는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창업자가 아무리 긴 말로 나무를 숲에 숨기려 해도, 글로 쓴 것과 크게 차이가 나면 그것은 말이 잘못된 것이지 글이 잘못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경험상 안다. 반대로 창업자의 말과 글의 차이가 적을수록, 그 창업자에 대한 신뢰도, 나아가서는 그 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커진다.

언문일치가 투자자와 창업자 간의 의사소통에서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상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아무리 듣기 좋고, 수려해도 그 사람이 쓴 글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면, 그 사람의 본심은 글에 담겨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의 말로 부정하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